좋은 말씀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무더위가 지나가면 이제 곧 가을이 오겠지요.

올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습니다. 지구 온난화 현상을 몸으로 절감한 여름이었습니다. 게다가 산타클라리타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계속 일어나 정말 조마조마했습니다.

여름 잘 나셨는지요? 올림픽 경기 덕분에 즐거웠다고 하는 분도 계시더군요? 메달 색깔과 관계없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은 감동적이죠. 하지만 세상은 늘 메달 몇 개를 땄는지, 몇 등을 했는지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꼴찌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일은 별로 없어요…

여름방학에 자녀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셨는지 궁금하네요.

교육(敎育)이란 낱말을 풀어보면 가르치고(敎) 기른다(育)는 뜻인데, 가르치는 일에는 극성스러울 정도로 엄청 열심인데 바르게 기르는 일에는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어서 말입니다.

얼마 전, 가수 한대수 씨가 다시 뉴욕으로 이사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2004년 뉴욕을 떠나 서울에 정착했던 한대수 씨가 12년 만에 뉴욕으로 돌아간 겁니다.

가수 한대수 씨 아시죠?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 같은 명곡으로 유명한 한대수 씨 말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르려나? 한국 청년문화와 대중음악의 새로운 세계를 연 전설의 음악인, 최근까지 창작열을 불태우며 총 12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같은 연배의 다른‘전설’들과는 달리 꾸준히 창작열을 불태워온 독보적인 존재…

한대수 씨는 1948년생이니, 올해 한국나이로 69세입니다. 칠순을 바라보는‘할배 히피’인 셈이죠.

그 나이에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은 늦둥이 딸의 교육을 위해서 내린 결단이랍니다. 그 소식을 읽으며 정말 마음이 짠했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기 때문이죠.

아무리 뉴욕이 37년 동안 살았던 제2의 고향이라지만, 그 나이에 미국행이라니, 쉬운 결단이 아니었을 겁니다. 대단한 용기지요.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을 테고, 음악인으로 빛을 보기도 무척 어려울 테니 밥벌이가 만만치 않겠죠. 그 이의 말투로 하자면‘화폐’를 벌기가‘양호’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맨해튼은 너무 비싸고, 퀸스나 브루클린에 집을 알아보고 있다네요. 큰 소리로 호탕하게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 나이에 취직은 안 될 테니 요리도 하고 장도 봐야죠. 방값도 제대로 못 내고 홈리스로 쫓겨나지나 않을지 걱정이 많죠. 하지만, 최근 빌리 조엘과 딥 퍼플, 밴 헤일런까지 미국에서도 복고풍의 음악들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으니, 혹시 모르지. 이번 기회에 내 음악도 미국에서 재평가 받게 될지도…”

한대수 씨의 자녀교육에 대한 생각을 간추려 보면, 바로 우리의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곰곰이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겁니다.

한대수 씨의 딸 이름은 양호, 지금 아홉 살이랍니다. 22살이나 어린 러시아계 미국인 아내 옥사나 알페로바와의 사이에서 59세에 낳은 딸입니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라니 몸과 마음이 한창 무럭무럭 자라야할 중요한 나이죠. 그런데“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합니다. 왕따를 당한다거나 딱히 문제가 생긴 건 아니라는데 말입니다.

“나도 아내도 딸도 한국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을 한국 학교에 계속 보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 공립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더 나은 교육을 받게 하려는 게 아니라, 한국 학교의 이상한 교육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조선일보>에 실린 인터뷰 기사 몇 구절을 옮겨봅니다.

“초등학교 때는 마음껏 놀고 인성과 인품을 올바르게 키워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죠.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즉 엠퍼시(empathy)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 공부, 공부, 외우고 외우고 또 외우는 것밖에 안 가르쳐요.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 정치적, 종교적 이슈를 두고 토론할 줄 모르는 겁니다. 너와 나의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초등학교 때 가르쳐야 하는데 만날‘1 더하기 1은 2’만 외우게 하잖아요.”

“아이들은 천천히 성장해야 하는데,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무조건 집어넣기에 바빠요. 부모들은 그 걸로도 모자란지 학원만 대여섯 군데 보내고. 아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니 행복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가 없죠. 내가 혁명가 체 게바라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니고 ‘제2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요.”

“한국 부모들, 특히 엄마들이 바뀌는 수밖에 없다. 아이를 키우려 하지 않고 자꾸 무엇인가로 만들려고 한다. 한국 엄마들에게 아이는 일종의 토이(장난감)이다”

그의 대표곡 <행복의 나라>의 노랫말을 떠올리면 울컥해집니다.

“벽의 작은 창가로 흘러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내 아이 웃음소리 들으러‘행복의 나라’로 가겠다는 외침, 자녀에게 양호한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고군분투…
“양호에게 많은 사랑을 준 아빠, 그리고 양호로 인해서 많은 행복과 즐거움을 받은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 그리고 부디 양호가 날개를 펴고 이 세상을 자유롭게 거리낌 없이 날아다니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한대수 씨의 말 중에서도 특히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 지적은“한국 부모들, 특히 엄마들은 아이를 키우려 하지 않고 자꾸 무엇인가로 만들려고 한다. 한국 엄마들에게 아이는 일종의 토이(장난감)이다”라는 말입니다. 말이 좀 과격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물론 저 자신도 되돌아보며 반성합니다. 과연 아이들의 행복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길렀는지? 자꾸 무엇인가로 만들려고 억지를 부리지 않았는지? 반성합니다. 이민 1세들이야 아이들이 다 자라 제 갈 길을 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해도, 젊은 부모들은 참 교육이 뭔지를 깊이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대수 씨의 음악, 인생, 행복, 자유 등에 대한 생각을 좀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싶어집니다. 어쩌면 예술인 한대수의 뉴욕행이 딸의 교육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자유를 찾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음악이 나의 거친 삶을 살아갈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음악이 나를 고독하지만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음악인이어서 참 다행이었던 게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들을 때면 그만큼 내 고통이 나눠지는 것 같았다. 참 고마웠다. 음악가로서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고통을 많이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이 나의 음악을 듣고 감명을 받을 때, 내게도 그것이 치유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 기능을 하나하나 잃어가는 일이 슬프고, 또 언제 그 기능이 다할 진 알 수 없지만 내게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늘 마지막이란 마음가짐으로 무대에 오를 뿐, 어떤 무대가 마지막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내가 <행복의 나라로>라는 노래를 만들긴 했지만, 솔직히 행복이 뭔지 잘 모르겠다. 행복을 일부러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냥 매일 아침 Thank you, lord라고 하며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며, One day at a time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사는 것이다”

“매일같이 어두컴컴하다. 절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늦은 나이에 돈을 벌어야 하니 참 어렵다. 그래서 요즘 예수 생각이 많이 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면 예수가 얻어맞고 또 얻어맞고 하는데 지금 내가 그런 느낌이다.”

“내 창작의 원천은 고통이다. 칠순을 앞둔 나이에 물건을 놓을 공간조차 마땅치 않은 단칸방에서 손녀 같은 딸과 딸 같은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데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겠느냐? 고통과 마주했을 때 무릎을 꿇으면 인생은 끝나버리고 만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고통을 창작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정치적인 자유로는 인권, 평등 같은 것들이 있겠지만, 내적인 자유가 무엇인지는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다. 나 자신의 껍데기로부터 해방될 수가 있나. 사실상 죽음이 마지막 자유야. 나도 모르겠다. 하하하”

<조선일보> 한현우 주말뉴스부장의 칼럼은 이렇게 끝납니다.

“1974년 권위주의 정권의‘금지곡’조치에 쫓겨 한국 땅을 떠나 뉴욕으로 갔다가 돌아온 한씨는 69세 노구(老軀)로 다시 뉴욕에 간다. 이번엔 권위주의 시대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한국 교육에 쫓겨 가는 것이다.”

평생을 기타 하나에 의지해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롭게 살아왔던 한국 록의 전설 한대수,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다니기 위해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절박하고 부단한 날갯짓을 해야 했던 그의 마지막(?)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해야 한다는 건 잘 알지만, 정작 사랑하는 법을 잘 모르거나 아주 서툴게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 가슴이 아립니다. 사랑해야 할 바로 그 때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일, 미루거나 쑥스러워하지 말고…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바람직한 자녀교육의 지름길은 대화라고 하더군요. 일방적인 명령이나 잔소리 말고, 소통과 대화 말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행복의 나라로 가는 오솔길일지도 모르지요. <*>

 

 

장소현 선생님의 글

http://vk-news.com/index.php?mid=jang_column&document_srl=21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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